시가 있는 풍경

나는 늙으려고

리프그린 2014. 11. 8. 22:05

 

 

도서관에서 빌린 정빈이의 책을 반납하고

새로운 책을 빌리고...

그냥 가기 허전해서 2층 성인 도서 자료실을 들렀다.

읽을 만한 책도 없고

딱히 뭔가를 읽을 맘도 없어서

성의없이 서가를 서성이다가 뽑아든 시집 한 권

무심코 펼쳤다가

감전이라도 된 듯

첫 문장에서 몸이 얼어 버렸다.

 

 

나는 늙으려고 이 세상 끝까지 왔나 보다

북두칠성이 물가에 내려와 발을 적시는

호수, 적막하고 고즈넉한 물에 비친 달은

붉게 늙었다 저 괴물 같은 아름다운 달

뒤로 부옇게 흐린 빛은 오로라인가

이 궁벽한 모텔에서 아직 다하지 않은 참회의

말 생각하며 한밤을 깨어 있다

언젠가는, 반드시, 어디론가 사라질

삶, 징그러운 얼굴들 뿌리치려 밤새

몸 흔드는 나뭇잎들, 아주 흐리게 보이는

소리 사이로 눈발 같은 미련 섞여 있어

눈물겹다 세상의 길이란 길

끝에서는, 삭은 두엄 냄새 같은, 편안한

잠 만날 줄 알았건만 아직 얼마나 더

기다려야 저 기막힌 그리움

벗어 놓는단 말인가 부끄러운 나이 잊고

한밤을 여기서 늙어 머리 하얗게 세도록

바라본다 허망한 이승의 목숨 하나가

몸 반쯤 가린 바람 사이로 흔들리는 것을

 

        _ 나는 늙으려고. 조 창 환

수도원 가는 길 , 문학과 지성사

 

 

작년 가을 무렵 즈음 내 발로 걸어 들어갔던 허름한 철할관

사주 풀이 해주시던 할아버지의

"아주머니는 빨리 늙어야 겠어. 늙어야 편해지겠어" 라던

그 말씀이 시의 첫 문장에 자꾸만 오버랩 되는 건 왜인지...

사는 일에 자꾸만 지쳐가는

시든 내가 안쓰럽고, 싫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