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프그린 2014. 12. 2. 13:42

 

                                                                    

 

마감일은 지났고

쿠폰 사용 기간도 넘겼고 케이크도 상했고

미련스레 기다리던 사람도 욕을 하며 떠났다

아버지도 죽었다

이런 말은 하지 않는 편이 낫다.

 

안절부절못하는 사이

아랫배는 아프고

생리는 안 터지고

달걀은 프라이가 되거나 치킨이 되고

인간도 아닌 것이거나 인간 이상이거나 다 인간이고

하지 않는 편이 나았을 많은 소리를 지껄였고

검은 코트는 다섯 벌이나 되고

 

갔으면 갔다가 돌아왔을 시간 동안

잤으면 수만 가지 꿈에 빠졌다가

일어나 밥 먹고 물 마시고 다시 수백 명하고 잤을 동안

죽었으면 물통이 되었을 시간

 

갈까 말까 머뭇거리는 동안

할까 말까 망설이는 동안

 

어제는 등기우편을 찾으러 갔다

집으로 두 번 방문했다가 사람이 없어서 우체국에서 보관하고 있다나 뭐라나

아는 시인이 보낸 청첩장이었는데 결혼식 날짜는 그저께였다

 

이런 내 인생

한심한 돌멩이

공기에 삭는다

자살도 살인도 용서도 사랑도 포기도 체념도

또 뭐 있더라

이 터무니없는 관념적인 단어들은

미루고 미루고 또 미루고

그러는 사이

저절로 비가 오고 눈도 오고 바람도 불고

 

오늘도. 김이듬

말할 수 없는 애인 / 문학과 지성사

 

감기로 콧물과 코막힘을 수없이 반복하는 아이들이

막힌코로 힘겹게 숨쉬며 낮잠을 잔다.

힘겹고 무거운 숨소리가 방 안의 공기를 채집하고 있다.

'공기에도 삭는 한심한 돌멩이'같은 내 인생이

또 하루를 기록하고, 어제 내린 첫 눈은 겨우살이 열매를 더욱 붉게 만든다.

 

살아가는 건 아무것도 아니다.

의미 따위 있을 수 없다.

우연히 태어났으니

우연을 가장하여 생의 순간들을 선택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