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프그린 2011. 6. 27. 23:31

 

                                                                                                                                                       <2010년 12월 제주에서...>

 

-- 어느 새--

 

 

사랑이 어떻게 오는지

나는 잊었다

 

노동과 휴식을 바늘질하듯 촘촘히 이어붙인 24시간을

내게 남겨진 하루하루를 건조한 직설법으로 살며

꿈꾸는 자의 은유를 사치라 여겼다

고목에 매달린 늙은 매미의 마지막 울음도

생활에 바쁜 귀는 쓸어 담지 못했다 여름이 가도록

무심고 눈에 밟힌 신록이 얼마나 청청한지

눈을 뜨고도 나는 보지 못했다

 

 

유리병 안에서 허망하게 시드는 꽃들을

나는 돌아보지 않았다

의식주에 충실한 짐승으로

노래를 잊고 낭만을 지우고

심심한 밤에도 일기를 쓰지 않았다

 

어느날 당신이 내 앞에 나타나

비스듬히 쳐다볼 때까지

 

 

최영미/ 도착하지 않은 삶 / 문학동네 /2009

 

 

*'노래를 잊고 낭만을 지우고 심심한 밤에도 일기를 쓰지 않'는 '의식주에 충실한 짐승' 여기 하나 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