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풍경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리프그린 2012. 6. 17. 01:17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  이 원 규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천왕봉 일출을 보러 오시라
삼 대째 내리 적선한 사람만 볼 수 있으니
아무나 오시지 마시고

노고단 구름 바다에 빠지려면
원추리 꽃무리에 흑심을 품지 않는
이슬의 눈으로 오시라

행여 반야봉 저녁 노을을 품으려거든
여인의 둔부를 스치는 유장한 바람으로 오고
피아골의 단풍을 만나려면
먼저 온몸이 달아 오른 절정으로 오시라

굳이 지리산에 오시려 거든
불일 폭포의 물 방망이를 맞으러
벌 받는 아이처럼 등짝 시퍼렇게 오고

벽소령의 눈 시린 달빛을 받으려면
뼈마저 부스러지는 회한으로오시라

그래도 지리산에 오려거든
세석 평전의 철쭉꽃 길을 따라
온몸 불사르는 혁명의 이름으로 오고

최후의 처녀림 칠선 계곡에는
아무 죄도 없는 나무꾼으로 만 오시라

진실로 진실로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섬진강 푸른 산 그림자 속으로
백사장의 모래알 처럼 겸허하게 오고

연하봉의 벼랑과 고사목을 보려면
툭하면 자살을 꿈꾸는 이만 반성하러 오시라

그러나 굳이 지리산에 오고 싶다면
언제 어느 곳이든 아무렇게나 오시라

그대는 나날이 변덕 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 마음이니
행여 견딜만 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 오늘 라디오에서 이 노래를 들었다.

   내 차 스테레오의 늘 고정된 채널에서 흘러나오던 이 노래

   호소력 짙은 목소리가 안치환인가?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DJ가 '안치환의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이라고 소개한다.

   노랫말이 예사롭지 않다... 라고 생각했는데,  찾아보니 이원규 시인의 시다.

   나는 지리산에 가본 적이 없다.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지리산 휴게소'는 서너 번 들러봤지만

   지리산은 가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아쉽다. 내내 목에 걸린다.

   꼭 한 번 가봐야지. 늘 생각만 그렇다.

 

   시의 마지막 연이 가슴을 휘젓는다.

   '행여 견딜만 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견딜만 하다면... 견딜만 하다면

   사실 나는 견디기가 어렵다.

   사소한 일에 울컥, 눈 두덩이 뜨듯해진다.

  

   '툭 하면 자살을 꿈꾸'기도 하는 나 이기에

   '백사장의 모래알처럼 겸허한 모습으로' 반성하러 지리산으로 가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