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집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기형도 / 잎속의 검은 잎 / 문학과 지성사
# 문득 고개들어 하늘 본다.
바람이 휘저어놓은 구름 몇 점 한가롭다.
더는 내것이 아닌 열망들을 헤아려 본다
살아오는 동안 이토록 쓸쓸해 본 적이 있던가
지금 이 어둠속에서 벗어나려 애쓰지 말자
발버둥 치지 말자
다만 기다리자, 시간이 흐르도록 내버려 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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