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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풍경

나쁜 소년이 서 있다

  세월이 흐르는 걸 잊을 때가 있다. 사는 게  별반 값어치

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파편 같은 삶의 유리 조각들이

처연하게 늘 한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무섭게 반짝이며

 

  나도 믿기지 않지만 한두 편의 시를 적으며 배고픔을 잊

은 적이 있었다. 그때는 그랬다. 나보다 계급이 높은 여자

를 훔치듯 시는 부서져 반짝였고, 무슨 넥타이 부대나 도

둑들보다는 처지가 낫다고 믿었다. 그래서 나는 외로웠다.

 

  푸른색. 때로는 슬프게 때로는 더럽게 나를 치장하던

색. 소년이게 했고 시인이게 했고, 뒷골목을 헤매게 했던

그 색은 이젠 내게 없다. 섭섭하게도

 

  나는 나를 만들었다. 나를 만드는 건 사과를 베어 무는

것보다 쉬웠다. 그러나 나는 푸른색의 기억으로 살 것이다.

늙어서도 젊을 수 있는 것. 푸른 유리 조각으로 사는 것.

 

  무슨 법처럼, 한 소년이 서 있다.

  나쁜 소년이 서 있다.

 

 

   나쁜 소년이 서 있다 / 허 연 / 민음사

 

# 시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소설이나 수필처럼 한 문장이 고유한 뜻을 갖는 것이 아니라

  읽는 이에 따라 수천 수만 조각으로 빛날수 있는 문장으로 이루어진 것이 바로 시라고 생각한다.

 

  무더위에 지친 몸과 마음은 일상의 모든것을 권태롭고 고된 노동으로 인식한다.

  천금같은 아침 시간 한 켠에서 시를 읽는다.

  아프고, 또 아름답다. 시가 내가 되고 내가 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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