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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맡의 책 한 권

고통이 아니라 경험에 집중하라.

  제아무리 힘들더라도 여행하는 동안에는 젖 먹던 힘까지 동원해서 하나라도 더 보려고

애쓴다. 여행에도 반드시 끝이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나는 타이완에 다녀왔다.

그 여행의 교훈은 제정신이라면 여름에는 타이완을, 그것도 타이페이를 갈 생각을 하지

말아야만 한다는 점이었다. 옷을 갖춰 입고 찜질방 불가마 속을 하루 종일 걸어다니면

대충 8월의 타이완 여행과 비슷하리라. 그럼에도 나는 그 찌는 듯한 더위를 웃으면서

견딜 수 있었다. 왜냐하면 타이페이 타오위안국제공항에 내렸을 때, 나는 그 여행이

나흘 뒤면 끝난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죽기 전에 내가 다시 타이페이를 방문할

수 있을까? 여행지에서는 그런 질문을 자주 던지기 때문에 영혼이 깨어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아마 평상시에도 그런 질문을 반복적으로 던진다면, 누구의 영혼이라도

깨어나리라.

  죽기 전에 내가 이런 소설을 다시 쓸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은 내게 무척 중요하다.

서른다설 살에 쓴 소설을 읽노라면 다시는 그런 소설을 쓰지 못할 것 같다. 그러므로

지금 쓰는 소설 역시 미래의 내가 다시 쓸 수 없는 소설이겠지. 그 사실을 알고 나면

소설을 쓰는 순간은 모두 최후의 순간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다시 그런 소설을 쓸

수는 없을 테니까. 그렇다면 써 볼 건 다 써 봐야만 한다. 힘들다고 더 이상 못 쓰겠다고

말하는 건, 타이페이를 갔더니 너무 더워서 호텔에서 한 걸음도 나가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과 똑같다. 내가 타이페이를 다시 방문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만

할까? 더위보다는 경험에 집중하게 되겠지.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은 고통이 아니라 지금

소설을 쓰는 일이다. 그리고 고통이 아니라 지금 소설을 쓰는 일에 몰입한다면 결국에는

소설을 완성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마치 짧은 여행이 끝나고 남쪽 나라의 뜨거운 도시를

떠날 시간이 결국 찾아오는 것처럼. 그때 우리는 짧은 행복을 누린다.

고통이 아니라 경험에 집중하는 일을 반복적으로 행하는 건 삶을 살아가는 데 상당히

도움이 된다. 우리의 삶 역시 끝이 있는 여행이지만, 그 사실을 매 순간 염두에 두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다모클레스의 칼’이라는 서양의 격언을 들어 본 일이 있으

리라. 시칠리아 시라쿠스의 참주였던 디오니시오스 1세는 한 호화로운 연회에서 측근인

다모클레스를 자기 자리에 앉혔다. 그 자리에 앉고 나서야 다모클레스는 말총 한 올에

매달린 칼날이 자기 머리를 겨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리하여 다모클레스가

깨닫게 된 것은? 제아무리 부유하고 권력 있는 자리에 앉았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삶에는

반드시 끝이, 그것도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시간에 찾아온다는 것이었다. 누구라도 그런

자리에 앉았다가 일어나면 자기 인생의 사소한 부분까지 모두 사랑할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에게는 디오니시오스 1세처럼 인생의 진리, 즉 모든 것에는 끝이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는 사람이 잘 없다는 점이다. 우리가 삶의 사소한 부분들을 무시하고

굵직굵직한 것들의 꽁무니만 쫒아 다니다가 결국 후회하면서 죽는 까닭은 그 때문이다.

 

지지 않는다는 말 - 달리기는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23-25) / 김연수/ 마음의 숲

 

 

고통이 아닌 경험에 집중하라는 글귀에 눈이 번쩍 뜨였다.

나로 말할것 같으면 내 인생의 팔할 이상을 고통에 집중하며 살았다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하지만 매 순간 그 고통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며 살았다.

그런데, 요즘 내가 그러지 못하고 있다. 고통의 수렁에 빠져서 너무 오랫동안 허우적거리고 있다.

사는 일이, 아니 내 인생 전체가 내 뜻대로 굴러가지 않는다는 것이 너무 힘들다.

납득할 수가 없다. 내가 바라는 건 그렇게 대단한 것들이 아닌데, 요모양 요꼴의 범위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는 내 삶을 납득 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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