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좋은 날들은 흘러가는 것 잃어버린 주홍 머리핀처럼
물러서는 저녁 바다처럼. 좋은 날들은 손가락 사이로 모래알처럼
새나가지 덧없다는 말처럼 덧없이, 속절없다는 말처럼이나 속절없이
수염은 희끗해지고 짖궂은 시간은 눈가에 내려 앉아 잡아당기지
어느덧 모든 유리창엔 먼지가 앉지 흐릿해지지. 어디서 끈을
놓친 것일까. 아무도 우리를 맞당겨 주지 않지. 어느날부터, 누구도
빛나는 눈으로 바라봐주지 않지
눈멀고 귀먹은 시간이 곧 오리니 겨울 숲처럼 더는 아무것에도
애닯지 않은 시간이 다가 오리니
잘 가렴 눈물겨운 날들아.
작은 우산속 어깨를 겯고 꽃장화 탕탕 물장난 치며
슬픔없는 나라로 너희는 가서
철 모르는 오누인듯 살아가거라.
아무도 모르게 살아가거라
김사인 "화양연화"
누군가가 나를 "빛나는 눈으로 바라봐 주"던때가
대체 언제적 일인지...
나이를 먹는 다는 것에 안도감이 들때도 있지만
쓸쓸해질 때도 있다.
흰 머리가 눈에 띄게 늘어나고 눈가, 입가 피부의
탄력이 중력을 이겨내지 못하는 것들을
매일 거울을 통해 목격하게 되면
가슴 한 켠에 스산한 바람 한 줄기 훑고 지나간다.
'이번 생은 글렀지? 그치?'
멋적은 말들을 궁시렁 거리며 흰 머리칼을 검은 머리칼 사이로
밀어넣고, 싸구려 탄력크림을 얼굴에 듬뿍 찍어 발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