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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하루

친구

지난주 금요일 서울에 올라가 Y를 만났다.

내 기억으론 중학교 졸업하고 처음인것 같다. 한... 삼십여년만에 만난것 같다.

그 시절, 보수적인 시골 사회에서 우린 소위 공개 사귐을 했다.

연애가 아니고 사귐이라고 한건, 정말 말 그대로 서로 좋아하는 '마음만' 확인했을뿐

따로 만나 시간을 보내거나 그래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중3때, 우리집이 한마디로 풍비박산이 난적이 있었다.

엄마는 집을 나가고 아빠는 집에 들어오지 않고

우리 사남매만 셋집에 덩그러니 남겨졌던 그때

하루는 내가 학교를 가지 않았다.

사는게 그지같고 학교같은거 다니면 뭐하나 싶고 그래서

무단 결석이란걸 했다.

그런데, 그날 저녁 Y가 우리집엘 왔다. 걱정된다고...

나는 너무 놀라고 반갑고 가슴 두근대고

한편으론 잡초 무성한 마당이 마치 우리 집안 꼴인것 같아서

창피하고... 그랬다.

별 얘기 나누지 않았던것 같다.

왜 학교 안왔냐고, 걱정됐다고.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치고 어색한 대화를 수줍게 나누었었다.

그게 그렇게 오래 오래 기억에 남았다.

세상에.. 나를 걱정해 주는 사람이 있구나...


엊그제 만난 Y와 나는 5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

세상물정, 남녀관계 알만큼 알고, 닳을 만큼 닳아서

수줍음은 사라지고, 첫 만남의 어색함도 잠시, 즐겁고 유쾌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살아온 얘기, 서로의 배우자에 대한 얘기, 특히 아이들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래, 우리 이렇게 나이를 먹고 늙었구나!

서로의 얼굴에서 삶속에서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이만큼 살아보니 좀 알것같다.

어떤사람이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주는지,

나의 성취나 성공을 순수한 마음으로 축하해 주는지,

나의 불행이나 슬픔을 진심으로 위로해주는지,

나를 시기하고, 나를 깔아 뭉개는지, 위하는척 하며 돌려 까는지,


그래서 친구가 되거나 마음을 나누는 관계가 되는게 더 어려운지도 모르겠다.

상대의 말이나 행동들에서 위의 것들을 발견하면 마음의 문이 굳게 닫힌다.

더 이상 그사람의 말이 진심으로 들리지 않는다.


한번 본 걸로 충분하다.

Y는 적어도 무책임한 사람은 아닌것 같다.

순수하게 '옛친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쿨하고 산뜻한 마음으로

나를 대해준 그가 고마웠다.  

그의 삶과 가정의 행복을 진심으로 응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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